- 본국 지진 경험담 2제 -

[첫번째 이야기] "악, 아빠! 아파트가 흔들려요"

오전 11시 조금 못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때 '콩트'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건물이 흔들렸다. 나는 처음에 착각이려니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자꾸만 흔들린다. 마치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것 같다. 아니 흔들리는 배 위에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제야 겁이 더럭 난다. 이건 아니다. 나는 방을 뛰쳐나갔다. 건물이 무너진다? 그렇다면?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25층 짜리다. 나는 23층에 산다. 무너지면 그걸로 끝이다.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악, 아빠! 아파트가 흔들려요."
"이게 웬일이지요?"

아내가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다말고 황급히 거실로 뛰어온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있다. 여전히 건물이 흔들린다. 나는 옷을 주워 입었다. 그렇다고 별 뾰족한 방법이 있을 수가 없었다. 23층이라서 내려가는데도 한참이 걸린다. 이제 어떡한다. 그때 문득 몇 년 전 일이 떠오른다.

2003년이었다. 밤 10시쯤 되었을 것이었다. 태풍이 왔다. 태풍 이름은 '매미'였다. 바람이 엄청 세게 불었다. 바람 소리에 놀라 우리 가족은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탁탁. 바람이 베란다의 유리문을 때렸다. 엄청난 바람이었다. 유리가 깨지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바로 그때였다. 내 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전기가 나간다. 이제 온통 어둠뿐이다. 아파트 여기저기에서 비명소리가 들린다.

"악! 악!"
"아파트가 흔들린다!"

그런 비명은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공포감이 우리 가족을 짓눌렀다. 얼마가 지났는지 모른다. 단지 오래되었다는 느낌뿐이었다. 드디어 바람이 멎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거실에 이부자리를 폈다. 공포감 이후의 안도감이 이런 것이었을까, 나는 이내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바로 오늘 나는 그때와 똑같은 경험을 했다. 아파트가 흔들린다? 갑자기 이사 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바람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바람이 전혀 불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건물을 흔들 정도는 아니었다.

"지진이 아닐까요?"

아내가 말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때맞춰 아파트 관리실에서 방송을 한다. 시청에 알아보았더니 지진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아내가 텔레비전을 켰다. 지진이 일어났다는 속보가 나온다. 그제야 안심이 된다. 어떤 공포든 결과를 알고 나면 그 공포감은 해소되는가 보다. 어느새 아내는 일상으로 돌아가 있었다.

"애들아, 점심 뭐 먹을래?"
"통닭 시켜주세요, 엄마."
"아빠한테 말씀드려볼래?"
"여기 ○○아파트 ○○○○호인데요. 통닭 한 마리 갖다 주세요. 생맥주도 1000㏄만 갖다 주세요."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지진의 공포감이 머리 속에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쓰다 만 '콩트'를 들여다본다. 이제 결말만 남았다.

[두번째 이야기] "엄마, 아직 죽고 싶지 않아요!"

일요일인 오늘(20일) 아침 일찍, 전기압력솥에 쌀을 씻어 앉혀 놓고 아들아이에게 "1시간쯤 후에 전기코드를 꽂고 취사 버튼을 눌러 달라"고 부탁을 한 후, 저는 우리 아파트 바로 건너편에 있는 대중목욕탕에 다녀왔습니다.

목욕탕에 다녀와서 어제 시장에서 사 온 미나리를 데쳐내고 새콤달콤하게 무쳐서는 은빈이, 승완이와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늦은 아침식사를 하고 있던 순간에 우리 집 전체가 심하게 흔들리는 현상이 느껴졌습니다.

식탁 바로 위에 있는 전등갓이 출렁 출렁 그네를 타고, 싱크대 속 함지박에 하나 가득 담겨 있던 물이 철퍽 철퍽 넘치는 소리가 났습니다. 25층 고층아파트 중에서 제일 꼭대기인 25층에 살고 있던 우리 집은 그 흔들리는 강도가 확연하게 느낄 수 있을 만큼 심했습니다.

순간, "엄마!!! 우리 집이 왜 이러는 거예요?"하고 묻던 중학교 2학년인 은빈이와 1학년인 승완이가 거실로 달려가더니 거실바닥에 철퍼덕 엎드리면서 "엄마! 엄마도 빨리 이리 오세요! 전등이 엄마 머리 위로 떨어지면 어떻게 해요!"하고 소리를 쳐 댔고, 은빈이는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아요! 더 살고 싶어요!"하며 소란을 떨었습니다.

이게 단순히 우리 집에서만 생긴 현상인지, 아니면 지진 때문에 일어나는 모든 집들의 공통된 현상인지 알고 싶어서 뒷 베란다로 달려가서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는데 도로를 걷는 사람들이나 주변의 풍경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화롭기만 했습니다.

다시 식탁으로 돌아와서 식탁 위로 길게 줄을 드리운 전등을 쳐다보니 전등갓은 아직도 흔들리고 있었고, 아이들은 안방으로 뛰어들어갔다 나오면서 안방 침대도 흔들리더라고 소리를 칩니다.

그러고 나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모든 것이 제자리에서 잠잠해지고, 끝내지 않은 식사를 마치고나서 설거지를 하던 중에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한참을 웃었습니다.

저의 커다란 웃음소리에 은빈이와 승완이는 내 곁으로 다가와서는 "엄마, 왜요?" 하고 묻습니다.

"있잖아~ 아까 지진으로 우리 집이 심하게 흔들릴 때 말이야~ 너희들이 살겠다고 거실바닥에 꼭 개구리처럼 철퍼덕 엎드린 모습을 생각하니까 자꾸 웃음이 나지 뭐니~~"

순간 은빈이는 쑥스러운 듯 "에이~ 엄마는~~"하고 멋쩍은 웃음 짓습니다.

창원의 대단위 아파트단지 내 25층 최고층에 살면서 이제까지는 햇볕도 잘 들어오고, 전망도 좋고, 위층으로부터 전해오는 소음도 없어서 좋다고 주변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기도 하고 나름대로 무척 만족을 하고 살았었는데, 오늘 아침 지진소동을 겪고 나니 정말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또 오늘보다 강도가 몇 배나 강한 지진이 예고도 없이 닥쳐온다면 순식간에 대피해야 하는 문제도 있고, 행여 25층이 와르르 무너져 버리기라도 한다면 우리 가족들은 아예 뼈도 못 추릴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스쳤기 때문입니다.

오늘처럼 자연으로부터 아무 예고 없이 찾아오는 지진이나, 또 지난번 동남아시아를 덮쳤던 쓰나미 같은 거대한 해일 앞에서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 엄청난 재앙을 모두 받아야 하는 우리 인간들은 아주 작은 미미한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절실하게 깨달았던 일요일 오전이었습니다.